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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넨 존잘이랑 사귀지 마라

​W. 팔백

  제목: 너넨 존잘이랑 사귀지 마라…

  ㅇㅇ (판) 2021.09.08 16:06 조회11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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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훈하다면서 애매하게 잘생긴 애들 말고 진짜 존잘이랑 한번 사귄적있는데 진짜 존잘이랑 절대 사귀지 마라.

  1. 진짜 잘생긴 거 아니면 성에 안참 다른 남자 만나도 계속 걔 얼굴 생각남

  2. 다시 이정도 존잘 만나 수 있을까 싶어서 헤어지면 내가 비참해짐

  3. 싸워도 얼굴보면 화 풀린다는 거 ㄹㅇ임 팩트

  4. 다른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쳐다보는 거 느껴짐 존나 신경쓰임;;

  5. 내가 을인 연애를 할 수 밖에 없음… 진짜 잘생겼으니까…

  6. 걔 사진만 보면 추억 미화됨… 매달려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음

  7.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내 앞에서 걔가 울면 마음이 약해짐

  하… 니들은 진짜 존잘남이랑 사귀지 마라….

 

  .

  .

  .

  ㅇㅇ 2021.09.08 16:55 추천116 반대0

  댓글: 네 글 내용이 우릴 더 기대하게 만든다.

  1.

  서명호는 요즘 몹시 심란했다.

  뽀송뽀송한 실내에서 그 좋다는 빗소리를 들으며 큰맘 먹고 산 다기에 차를 우려도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서명호는 갓 사랑니를 뽑은 스무살 마냥 미묘하게 불퉁한 얼굴로 하루 내내 지냈다.

  사유는 이렇다.

  서명호는 얼마 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사태에 대해 설명하기란 부족하다. 서명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등학생 때 깨달았고, 성인이 된 이후로 총 5번의 연애를 했다. 그 말은, 이별도 이번이 다섯 번째라는 소리다.

  세 번도 네 번도 아닌 다섯 번.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엔 서명호는 벌써 스물 다섯이고, 곧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별의별 일들을 겪으며 거의 열반의 경지에 오른 서명호는, 따지자면 이별 후 깨끗이 털어버리는 쪽이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쪽은 단연코 아니라 자신할 수 있었다.

  아직 졸업을 못한 것은 중국인임에도 군대 간 남자친구(전전 남자친구다.)를 위해 겸사겸사 휴학을 했던 탓이다. 그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휴학 하는 동안 시간을 허투루 날린 것도 아니고, 사랑 때문에 얻은 그 정도 손해는 훈장처럼 여길 줄 알았다. 연애 하는 동안은 아쉬움 없이 열렬히 사랑하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헤어지는 것. 그 놈의 말에 의하면, ‘꽤 낭만적’인 서명호는 “사람은 놓칠 때 낙엽처럼 우아하게 떨어져야 한다.”를 지론으로 삼고 있었고, 본인의 신념에 따라 약간은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혼자인 일상에 잘 적응하곤 했다.

  아무튼 요지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다는 것이다. 소위 ‘간죽간살’파인 서명호에게 헤어지고 나서 찔찔 우는 것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헤어진 지 이틀째, 신발 끈을 묶다가 결국 눈물이 터진 서명호는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다.

  그것도 아주.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우아하게 서점에 가서 읽을 시집을 고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명호는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향이 나고, 공들여 다린 최애 코트가 구겨지든 말든 꼴사납게 현관에 주저 앉아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뒤늦게 온 것 같았다. 호르몬의 변화가 아니면 이 눈물을 설명할 수 없다. 서명호는 인정해야만했다. 엊그제 헤어진 남자는 그동안 서명호가 만났던 그저 그런 남자친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뭐가 다르냐고?

  씨*. 와꾸가 달랐다.

  2.

  김민규는 지금껏 서명호가 사귄 남자친구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조금 더 과장 보태자면, 서명호가 살면서 얼굴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긴 것 같았다. 스타일링과 허세로 만들어진 ‘짭’과는 달랐다. 취향을 박살내는 존잘. 이견의 여지 없는 잘생김.

  이건 ‘찐’이었다.

  아닌 척해도 서명호는 껍데기에 민감했다. 예쁜 걸 보면 마음이 벅찼고, 잘생기면 절로 눈이 갔다. 스스로도 너무 속물처럼 느껴져 자중하려 노력했으나 이건 본능이었다. 인정하니 차라리 편했다. 아, 나 잘생긴 거 좋아하네.

  김민규는 입학했을 때부터 유명했다.

  사유: 잘생김.

  입학하자마자 에타며 대숲이며 온갖 학내 커뮤니티를 도배했고 그가 걸어 다닐 때마다 홍해처럼 인파가 갈라진다는 썰이 구전신화처럼 그의 주위를 떠돌아다녔다. 서명호도 그를 알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키에 핫바디.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잘생긴 확신의 존잘. 눈이 달려있다면 그를 잊기란 어려웠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 서명호는 김민규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한 번도 입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서명호는 김민규를 중앙 광장 잔디밭에서 처음 봤었다.

  뜬금없이 교수가 불러 상담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 상담의 결말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별안간 지금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인식이 밀려오면서 영 찝찝하고 울적한 기분이었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새가 지저귀는구나, 학우님들이 신나게 노는구나, 했을 텐데 예민하게 돋아난 신경 탓에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 대학교 혼자 쓰나. 뭐라 한마디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 얼굴만 보겠다는 뜻이었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그냥 밀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하던 얼룩덜룩한 잔디밭에 여댓명 되는 학우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김민규가 있었다.

  생태계 교란종. 메기남. 꿈의 남친 등등. 그를 지칭하는 현란한 수식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정작 서명호는 그 순간, 옛날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학당에서 배웠던 부사어가 하나 떠올랐다.

  반짝반짝.

  수많은 소설과 시에서 찬양하던 찬란함이 그의 웃음 속에 있었다. 서명호는 그 때 사람의 미소가 눈부시다는 것이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햇살처럼 부서져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웃음.

  낭만주의자 치고는 현실적인 축에 속하는 서명호는 그날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얼렁뚱땅 로맨스의 개연성을 납득했다.

  3.

  그렇게 남남인 채로 1년을 보냈는데 우연찮게도 서명호의 전전 남자친구의 군입대와 김민규의 군입대가 겹쳤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서명호는 그때 남자친구 놈을 따라 과감하게 휴학을 결정했다. 중국에 있는 본가에도 다녀오고, 자격증도 몇 개 따면서 그를 기다렸다.

  돌아온 건 빼도 박도 못하는 바람 현장이었지만.

  22년 인생 중 이런 놈은 또 처음이라, 서명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놈을 깠다. 제법 끈질기게 질척였지만 한 단호한지라, 쓰기만 하다고 취좆하던 소주를 깠다. 마시다 보니 익숙해졌는지 꽤 달았다. 꿀떡꿀떡 넘기면서, 이딴 게 썼다니 어린 날의 제가 얼마나 나약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너는 이게 쓰냐? 하, 나는 인생이 써서 아주 달달하다. 씨*.

  “…혼자 네 병 마신 거야?”

  명호의 지난한 연애사를 전부 꿰고 있는 몇 없는 사람 중 한 명인 승관이 그를 부축하러 데리러 나왔다. 승관은 무겁다고 잉잉 거리다가 나중에는 왜 이렇게 가볍냐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거 맞냐고 잔소리 했다. 하나만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올라올 것 같아 얌전히 건네주는 컨디션을 마셨다.

  명호의 네 번째 연애가 끝나던 순간이었다.

  4.

  민규와 처음 말을 튼 것은 복학한 뒤 처음 가진 동아리 회식 때였다.

  명호는 이번 학기에 들어온 신입이었는데, 고학번이라고 고학번 테이블에 앉히는 바람에 안 그래도 낯가리는 성격에 꿔보가 되고 말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부승관 뿐이었는데 본투비 과대 체질인 승관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으므로, 명호는 의젓한 척 했지만 토라진 티를 감추지 못하는 일곱살 어린이처럼 시무룩하게 강냉이만 퍼먹었다.

  명호를 꼬셔 이 동아리에 들게 한 장본인인 승관의 말에 따르면, 영화나 전시를 보러 다니는 문화생활동아리인척 하지만 실은 심심할 때마다 모여 술이나 퍼마시는 동아리라고, 승관은 무슨 대단한 첩보를 전달하듯 속삭였다. 그걸 알면서도 이 동아리에 든 건, 첫째로 매번 남자친구와 함께하던 문화생활을 이제는 연애의 도움 없이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고, 굳이 이 동아리였던 이유는 학교에 전시회 보러 다니는 동아리가 이것뿐이었던 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분간 연애를 좀 쉬고 싶었다. 좁고 깊은 관계 위주로 대학 생활을 했던 명호는 마지막 발악으로 친목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입 한 번 뻥긋 못하고 앉아 있을 줄 알았다면 오늘은 그냥 쨌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예 가입하지 않았을지도. 다들 민규가 돌아온 것을 축하한답시고 포지션 애매하게 덩그러니 놓인 명호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특히 동아리 회장이 진짜 가관이었는데 이렇게 잘생긴 애랑 친구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속셈이 뻔했으나, 명호는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런 시니컬한 생각은 맥주와 함께 넘겨버리기로 했다. 이 잔만 비우면 나가는 거다. 홀로 정우성에 빙의해 맥주잔을 노려보던 명호의 시선에 민규가 걸렸다. 알고 보니 바로 오른편 대각선이 바로 민규의 자리였다. 앉아있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탓에 회식이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눈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

  아, 지금 표정 좀. 명호는 반사적으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의 근육까지는 제어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이만 드러낸 채 미소 짓고 말았다. 약간 아차 싶었으나 곧 뭐 어때, 하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 꼬라지가 웃겼는지 상대방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맨 처음에 봤던 그때처럼 반짝반짝한 충격까지는 없었지만 여전히 근사한 얼굴이었다. 동네방네 자랑할만하네, 태평하게 그런 감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예의 없이 남의 얼굴이나 쳐다 보고 있다니, 아무래도 좀 취한 것 같았다. 그만 마시고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저기.”

  민규가 말을 걸었다. 어라. 이건 정우성 빙의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나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갈래?”

  인생 선배님들은 무수히 강조하셨다. ‘절대 술자리에서 따라가서는 안되는 대사 1위’에 빛나는 말을 육성으로 들은 그 순간, 명호는 이게 바로 '남자 여우짓'이구나 찰떡같이 깨달았다.

  하지만 깨닫는 것과 답을 아는 것은 또 조금 달랐다.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나 싶으면서도 얘가 굳이 나한테 그럴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번갈아 깜박거렸다.

  민규의 귀끝이 약간 붉었다. 취했구나. 그럼 정말 단순히 아이스크림이 땡겼을 수도 있겠다. 뼈게이의 과대망상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명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건 1초만에 이루어졌다.

  5.

  생각해보니 명호는 찬 음식을 잘 못 먹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좀 웃겨서, 명호는 얌전히 초코퍼지를 받아들었다.

  “너 나랑 동갑이지. 말 놔도 돼?”

  “…어어.”

  당황해서 눈만 껌벅이는 명호를 보고 민규가 또 푸핫, 하고 웃었다.

 

  “너 얼굴에 무슨 생각하는지 다 티 나는구나? 이번 학기 나랑 교양 같이 듣잖아. 중국어.”

  “아….”

  명호가 낸 멍청한 소리에 민규가 또 웃었다. 자꾸 웃는 바람에 불쑥 심통이 솟으려 하다가도 뺨을 발그레하게 물 들인 채 웃는 민규를 보니 아, 얘도 취했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기억력이 좋네.”

  “그런가? 그런데 너 눈에 잘 띄잖아.”

  “……내가?”

  대화가 자꾸만 예상 밖으로 흘렀다. 그건 너 아니야? 혀까지 올라온 대답을 욱여넣고 명호는 간신히 되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너 옷 잘 입잖아. 항상 멋지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에 갑자기 술기운이 확 도는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눈만 마주쳐도 연애감정이 돋아난다는 봄에, 날은 선선했고, 김민규는 잘생겼고, 대사도 오해하기 완벽했다. 왜 그렇게 수많은 인간들이 김민규를 부르짖었는지 알 것 같았다. 헤테로에는 죽어도 반하지 않는다가 신조인 서명호에게도 이번 건 좀 유효타였다. 사기 수준인 와꾸 버프 때문에 걸어놓은 인내심이 간당간당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신 차려야지, 헤테로 좋아해봤자 좆되는 건 이쪽이니까.

  6.

  그 모든 각오가 무색하게 서명호는 김민규와 말을 튼 지 한 달 만에 완벽히 함♥락♥ 되고 말았다.

  서명호는 키가 큰 것이 중요한 미덕인 중국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나름의 심미안을 갈고 닦아왔으며 김민규는 누가 짜놓은 자캐마냥 취향 존에 정확히 찔러 들어가는 사람이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에휴 그래.' 정도로 납득할 수 있었는데 단 한 가지 의외인 점이 있다면, 둘이 은근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까놓고 말해, 민규와의 연애가 "에효, 네 얼굴 봐서 참는다" st의 교제는 아니었다. 성격은 정반대에 어울리는 무리마저 달랐지만 취향이나 생각 같은 것이 영혼의 반쪽마냥 찰지게 들어 맞았으며,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쑥스러운 꿈이나 혼자만의 로망 따위를 서로에겐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둘은 끝내주는 염병천병 커퀴로 지냈다. 열림교회 닫힘 대한민국에서 둘은 생각보다 별 의심 없이 무탈하게 연애했다. 둘이서만 여행도 가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자취 인스타 비계의 비계의 비계를 만들어 꼭 둘이서만 팔로잉하고는 끝내주는 럽스타그램도 즐겼다. 남들 다하는 건 다 했고, 남들이 안 하는 것도 다 했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사랑했다. 그건 무슨 말이냐면,

 

  "근데 그날 너 왜 나한테 말 걸었어?"

  "글쎄, 운명인가 봐."

  이딴 개소리를 해도 "아 뭐야~" 하면서 웃어 넘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다.

  소울 메이트.

  그것이 그들을 정의하는 단어였다.

  7.

  "그렇게 잘 사귀다가 왜 헤어졌어."

  명호가 눈을 치켜떴다. 둥그런 눈매가 제법 사나워졌는데도 승관은 무서워하는 척도 해주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휴. 소명호, 소명호."

  멀쩡한 소주잔 놔두고 물컵에다 따라놓은 소주를 마시는 명호를 보고 승관이 질린 눈으로 핀잔했다. 하긴, 와인은 꼴도 보기 싫으시겠지. 전남친이랑 만나기만 하면 와인 드셨으니까. 승관이 일부러 얄밉게 비꼬는데도 틀린 말이 하나 없어 명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대신 눈앞의 계란말이에 젓가락을 푹푹 꽂자 승관이 말했다.

  "왜 애먼 계란말이한테 그래."

  "그렇다고 내가 너를 찍을 순 없잖아."

  "……."

 

 

  8.

  소울메이트. 영혼의 반쪽.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온리원이니 어쩌니 하던 것 치고는 두 사람은 자주 싸웠다. 안 맞을 땐 더럽게 안 맞았기 때문이다. 여행 갔다가 체력 다 떨어진 명호를 민규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끌고 다니다가 싸운 적도 있었고, 같이 맞춘 반지를 잃어버려 싸운 적도 있었다.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가끔 울기도 했다.

  그래, 바로 그 부분이 문제였다.

  싸울 때, 민규는 가끔 울었다. 본인은 눈물이 나는 게 분하고 억울한 모양인지 벅벅 문질러 눈물을 닦았지만 민규는 몰랐다. 명호가 그의 눈물에 얼마나 약한지. 그 애가 울면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언젠가 명호가 그렇게 말했더니 승관이 기절초풍을 했다. 시꺼먼 남자가 우는 게 뭐 그리 속상하냐면서. 하지만 명호는 민규가 울 때마다 아주 작고 가련한 어린 짐승을 떠올렸다. 그럼 속상해진 명호가 우는 민규를 달래주면서 상황이 일단락되곤 했던 것이다. 이게 전부 그 잘난 얼굴 때문이라고, 명호는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이번에 헤어진 건, 어쩌면 민규가 울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민규가 울었더라면, 명호는 또 마음이 약해져 미안하다고 했을 테니까.

  눈물이 민규의 필승 무기인 것 치고는 민규는 이 무기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민규의 눈물은 정말정말 귀했고, 그 때문인지 파괴력이 더 컸다. 명호는 또 생각한다. 우는 민규의 얼굴을. 귀여웠지. 하지만 조금 슬펐어. 그 애가 울면 너무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어.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입꼬리가 내려갔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형 지금 울어?"

  승관이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형 울면 나 갈거야. 나 진짜 형 버리고 간다."

  승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명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흐엉. 흡. 흑. 흐어엉.

  민규의 눈물이 귀하다고는 하지만 명호의 눈물은 귀하다고 갖다 대지도 못할 만큼 보기 귀했다. 애초에 남 앞에서 우는 게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명호는 더 서러워졌다. 이런 때, 곁에 네가 없다니.

  "아오, 진짜. 찔찔이! 울지 마, 형~."

  말하는 것과는 달리 친절한 승관이 휴지 두 장을 뽑아 건넸다. 나중에는 품에 안고 달래려고 하기에 못이기는 척 어깨에 기대서 또 조금 울었다. 아니, 형은 우는 것도 왜 이렇게 소리가 작아. 그 말을 들으니 간신히 멎어가던 눈물이 팡 하고 터져서,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9.

  "너 지금 뭐 하냐."

  ?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물기 때문에 시야에 빛번짐이 심했다. 두어번 눈을 깜박이는 동안 커다랗고 익숙한 형체는 분명해져 기어코 한 사람이 되었다.

  "…김민규?"

  "너 지금 나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남자한테 안겨서,"

  "예?"

  이제는 승관도 당황했다. 아니, 선배…. 승관이 황당해하는 동안 서명호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삐걱삐걱 돌려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웃사이더 뺨치는 속도와 딕션으로 2초만에 20자 내외의 문장을 내뱉는 남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김민규가 맞았다.

  "너 지금 미쳤냐? 얘 승관이야."

  "승관이면 뭐, 어쩌라고. 승관이는 남자도 아니야?"

  "…예??"

  사이에 낀 승관이 고굽척이라도 해보려고 다시 집게를 들다가 소리 질렀다. 좀 말려봐! 간절한 네 글자가 승관의 이마 위로 스쳐 지나갔다. 안타깝게도 신호는 닿지 못했다.

  "야, 너 말조심해라. 아무리 헤어졌다고 해도 지킬 건 남아 있는 거야."

  "하, 헤어졌으니 이젠 내 앞에서 다른 남자 껴안고 울고불고 다 하겠다?"

  "아니, 뭔 개소리야. 그럼 헤어졌으니까 다른 남자 껴안지 너랑 사귀고 있으면 그러겠냐? 내가 그랬어?!"

  "하, 이제 보니 아주 헤어질 날만 기다리고 계셨구만?"

  "그게 왜 그렇게 되는데??"

  옆에서 승관이 입을 벌리고 영혼이 탈곡되어가든 말든, 슬슬 소란스러운 기색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힐끗거리든 말든, 두 사람은 입털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 제발 형……. 나 여기 단골이란 말이야……. 울상이 된 승관은 옆에서 진정하라고 어깨도 눌러보고 주변 사람들 보고 죄송하다고 고개도 숙여보고, 들리지도 않아 보이는 두 사람 사이를 손바닥으로 휘저어보기도 했으나, 두 사람의 대화가 "예전에 네가……" 로 넘어간 시점부터는 '나 일행 아니오' 작전으로 변경, 조용히 남은 고기를 구워 먹었다.

  10.

  "…진짜?"

  앗.

  묘하게 시작이 잠겨있고 끝이 떨리는 목소리. 내가 방금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이새끼야. 너랑 헤어져서 속이 다 후련하다!"

  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딱히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뭐라고 했든, 꾹 다문 고집스런 입매를 보자 그제야 아차, 싶었다.

명호는 직감했다. 얘 운다.

  심장이 덜컥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명호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반사적으로 민규가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의 후드를 덮어버렸다. 명호가 모자를 씌우는 바람에 고개가 수그러든 민규의 손을 챘다. 그리고 그대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남은 된장찌개를 비우던 승관이 놀라서 소리치는 것이 멀게 들렸다.

  아무래도 존나게 취한 모양이었다. 얘 손이 익숙하니 다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민규가 오기 전부터 이미 많이 마셔서 조금, 아니 사실은 꽤 취한 상태였다. 뱅글뱅글 앞이 도는 와중에도 손을 타고 오는 민규의 손이 따뜻한 것이 느껴졌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마음이 놓였다.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11.

  "너 뭐냐."

  "뭐."

  "하나만 해라."

 

  민규가 내뱉는 모든 말들이 전부 어린애 같았다. 말투도, 내용도. 생떼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점점 술 기운이 날아갔다. 나는 취했다 쳐도 얘는 왜 이래, 생각하던 명호는 민규에게서도 술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럴 거면 왜 헤어졌니, 우리.

  "나랑 헤어져서 진짜 속이 후련해?"

  "……."

  "근데 나 왜 데리고 나왔어?"

  민규가 기대하는 답이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걸 말해주기 싫었다. 또 지고 싶지 않았다. 그 잘생긴 얼굴에 눈물 좀 찍어 발랐다고 와르르 무너지는 우스운 꼴을 또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 이제 진짜 안 봐……?"

  민규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얘가 이렇게 우는 건 사귀는 동안에도 본 적 없었다. 186짜리 성인 남성이 엉엉, 하고 목 놓아 우는 꼴이 징그럽기는 커녕 너무너무 속상한 것은 역시……

  명호는 인정해야 했다. 겨우 우는 소리 조금 들었다고 저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 울 것 같다 못해 심장이 박박 찢어질 것 같은 이유.

  명호는 잘생긴 얼굴이 우는 것에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민규에게 약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니까.

  마음이 존나게 아팠던 건, 존잘이 울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우니까 가슴이 찢어졌던 탓이다. 알아, 안다고. 명호는 되뇌였다. 하지만 이렇게 얼렁뚱땅 재결합해봤자…. 그간 두 사람이 스쳐 지나왔던 지난한 역사가 떠올랐다. 진짜 지독하게 많이 싸웠다. 아침엔 영혼의 반쪽이라며 시시덕거렸다가 해지면 철천지원수처럼 싸워대다가, 또 다음 날 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연인 사이가 되기도 했다. 사실 아닌 척 해도 감정소모가 심했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넘어가면 또 같은 이유로 또 이렇게 싸울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헤어지네 마네 할 수 있나? 내가 그걸 버틸 수 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했다. 나 너 사랑해. 너도 나 사랑해. 근데 존나 뭐가 이렇게 어렵냐. 이제는 명호도 울고 싶어졌다. 뭐 어쩌라고. 너는 아냐?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점점 눈가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명호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명호야아……. 나 너 좋아해…. 아직 많이 좋아해……."

  그 순간 날카롭게 찔러들어오는 완벽한 쐐기.

  명호 못지않게 폼 따지던 김민규가 한껏 얼굴을 구기고 울어댔다. 그 김민규가. 사랑한다면서 울고 있었다. 전혀 분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부 서명호 때문이었다.

  명호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씨발 안 되겠다.

  명호는 그대로 민규의 멱살을 잡았다. 끌려오면서, 반동으로 민규의 후드가 어깨 뒤로 넘어갔다.

  입술이 닿았다.

  빈틈없이 맞닿고 나서야 명호는 안심했다. 그래, 까짓거. 수명 좀 깎기지 뭐.

  내 인생에 너 같은 사람 다시는 못 만날 테니까.

 

  목덜미에 찰떡같이 감기는 손가락을 느끼면서, 명호는 눈을 감았다.

  이제 좀 숨쉬는 것 같았다. 

 

 

 

 

  +

  너 근데 동아리 회식 때 왜 나보고 아이스크림 먹자고 한거야?

  ……그야.

  그야, 뭐.

  너 예뻐서.

  응?

  너 예뻐서……. 한 눈에 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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