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mewhere over the Rainbow
W. 서망상
*잇른합작 : In My Ocean에 참가한 Aperture의 연작입니다
*호모포비아, 타CP인 원귤 언급이 있습니다.
*글 중 나오는 장소들은 실존장소이지만 Sacred Falls Hiking Trail은 1999년 산사태 이후로 잠정폐쇄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방문이 불가능합니다.
으응, 5분만 더…
베개 속으로 파고드는 중얼거림에 명호가 피식 웃었다. 커튼을 모조리 걷은 탓에 열대의 햇빛이 그대로 쏟아지는 방 안에서도 여전히 잠을 잘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눈이 부시긴 한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민규의 미간을 꾹꾹 누른 명호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나 혼자 구경 나갈까?
혼자, 구경, 신혼여행. 지금 저희가 어디에 무얼 하러 온 건지 연산에 드디어 성공한 민규의 뇌가 기상 신호를 삐익 삐익 울려댔음이 틀림없었다. 오 초 전만 하더라도 침대를 뚫고 맨틀까지 파고 들어가서 자려고 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빠릿빠릿하게 민규가 일어났다. 5 분만, 나 진짜 5분만. 세수만 하고 나올게.
“세수 말고 샤워랑 양치도 해도 돼~”
잠옷을 허물처럼 벗어던지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민규의 등 뒤에 명호가 얘기했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첫날부터 까치집으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했다. 정오가 되도록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아서 깨우긴 했지만, 그래도 내 남편이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은 해보고 싶어서. 어휴 잠민규. 어휴.
샤워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동안, 명호는 캐리어를 펴놓고 짐을 정리했다. 좀 느긋한 일정이면 좋았으련만, 결혼식 전후로 그렇게 일이 몰아닥칠 줄이야. 덕분에 본식 후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탔고, 하와이와 한국의 시차 덕에 다섯 시간 미래로 간 듯한데 사실은 열아홉 시간 과거로 갔다는, 그런 얘기였다. 가로등 불빛을 비추어봐도 멋들어진 고풍스러운 흰 건물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기에 두 사람은 체크인 후 씻고 그대로 쓰러져서 잤다. 당연히 짐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서랍과 옷장에 옷을 정리해 넣는 도중, 수영복과 래시가드를 들어내고 나니 그 밑에 있던 까만 가방이 드러났다. 그걸 보는 순간 명호는 아차, 싶었다. 빼는 걸 까먹었구나. 출발하기 나흘 전에 큰 짐은 미리 싸두자고 캐리어를 펴고 옷가지며 물건들을 고르던 중에 보일러가 터졌다. 워낙 오래된 집이라 곧 바꾸긴 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일 덕에 미루고 미루던 것이 하필이면 결혼식 직전에 고장이 났다. 심지어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당장 집에 있을 수 없어 석민의 집으로 함께 피신했는데, 결혼식 이틀 전에는 파티 음식을 담당한 케이터링 쉐프가 맹장염으로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제 폰으로는 수리기사 예약을 어떻게든 앞당겨보려고 통화 중, 명호 폰으로는 하와이행 비행기 편 변경을 알아보고 있던 민규는 줄줄이 늘어진 비행기 일정 위로 뜬 문자 미리 보기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틀 전에 케이터링 업체를 변경할 수도 없고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보일러 고장, 쉐프의 급성 맹장염, 여기서 끝났으면 민규와 명호도 결혼식 전에 한참 드라마틱한 며칠이었다고 웃고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케이터링 업체도 쉐프의 부재에 대한 대책 정도는 세워두고 있었으니까 하객들을 굶길 일은 없게 되었는데, 결혼식까지 30시간을 남기고 웨딩업체에서 생화 주문을 잘못 넣어서 꽃이 바뀌었단다. 스몰웨딩이니 꽃시장을 털어보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최대한 비슷한 꽃으로 맞춰보겠다고는 했지만, 흰 국화로 장식된 결혼식을 올릴 뻔한 민규와 명호에게 그다지 위안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편하자고 업체에 맡긴 건데 어쩌다 이렇게 꼬였냐? 그날 저녁, 명호와 민규는 석민의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에 나란히 앉아 시트팩을 붙인 채로 석민의 위스키를 깠다. 케이터링 쉐프가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까지는 술 마셨다가 결혼식 당일 뾰루지라도 나면 어쩌냐고 철벽 방어를 하던 석민도 꽃 주문이 잘못 들어갔다니 잠자코 장당 팔만 원짜리 시트팩과 크리스털 잔과 위스키 스톤을 꺼내와서 두 사람 앞에 가지런히 세팅했다.
“…일이 꼬이려니 이렇게 꼬이냐.”
“그냥 액땜한다 쳐. 이제 2월이잖아. 연말에 대박 나려나 보지.”
“돈은 돈대로 쓰고…”
“주문 잘못 넣어놓고 환불 안 해준대?”
화들짝 놀란 석민의 물음에 민규가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대리석에 이마를 박았다. 명호는 이마를 손에 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해주겠지, 설마. 국화 부케 들고 결혼할 뻔했는데. 이거 사고 난 거 승철이 형한테는 말하지 말아야지. 자기가 소개해준 업체가 실수했다고 미안해할 모습을 상상하니 역시, 말하더라도 나중에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한 내년쯤? 그때쯤이면 저도 민규도 와인 한잔하면서 아 형, 이런 일이 있었어 하면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속상해. 너희 결혼식에 계속 이런 일 생기는 거.”
잔뜩 풀이 죽은 석민이 말했다. 축가 담당인 석민은 서명호와 김민규가 결혼하는데 축가 부르다가 음 이탈 비스무리한 거라도 낼 수 없다면서 콘서트 준비하듯 목 관리에 들어갔다. 어차피 비공개 결혼식인데 뭐가 어때, 했지만 석민은 단독콘서트보다도 더 중요하다면서 오늘도 두 사람분의 위스키만 따르고 저는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액땜인 셈 치라며, 이석민.”
위스키 스톤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던 민규가 말했다. 명호는 민규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제 일처럼 속상해하는 석민이 기껍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난해 여름의 요란한 커밍아웃과 약혼 발표 이후 서둘러 결혼 준비를 하며 둘이 겪은 일들을 석민은 다 봤고, 들었다. 셋이 이렇게 밤 중에 모여 위스키를 홀짝인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모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민규가 다른 사진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빠지게 된지도 몇 달 되었다. 자기들이 한 말은 생각지도 않고, 민규가 청첩장조차 돌리지 않았다고 구시렁거린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서 작가 사회성은 물 말아 먹은 거 다 알지만 김 작가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면서. 어차피 국내에서 인정도 안 되는 결혼인데 뭘 그렇게 요란하게 하냐고. 하객 쉰 명도 되지 않는 비공개 소규모 결혼식인데 그게 요란하단 말을 들을 정도인가, 하고 물었더니 민규가 답했었다. 닥치고 조용히 숨어 살지 않고 당당해졌다고 그러는 거지, 뭐. 그날 민규와 석민은 위스키 반병을 아작냈다.
삼성동 삼총사 결혼하는데 뭐가 이렇게 역경과 고난이 많냐, 그냥 좀 스무스하게 가도 될 텐데. 하고 석민이 대신 한탄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 셋이 결혼하는 거 같은데 그건 좀 거시기하지 않냐? 하고 민규가 태클을 걸었고 명호는 둘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면서 나지막이 웃었다.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사흘이 지나고, 원우가 “이쯤 되면 마가 낀 결혼식 아니냐”고 중얼거렸다가 승관에게 등짝을 맞고, 결혼식은 잘 치러졌다. 삼성동 삼총사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한 결혼식이었다. 장소도 웨딩 업체도 승철의 인맥을 통해 소개받은 곳이었는데, 꽃 주문 실수 빼고는 정말 완벽했다. 어떻게 헷갈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벽부터 꽃시장을 탈탈 털어온 것인지 예정대로 노란색과 보라색 프리지어 장식으로 꾸며졌다. 코스 요리로 준비된 음식에서는 쉐프가 입원했다는 티도 안 났다. 지난 사흘간의 난장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림 같은 결혼식이었다. 각자 백색, 감색의 턱시도를 입고 있는 두 사람까지 전부.
물론 보일러 건은 여전히 해결이 안 된 터였던지라 그건 결혼식 이튿날 오전에야 마무리되었고, 민규와 명호는 드레스룸 바닥에 펼쳐져 있던 캐리어에 이미 꺼내어져 있던 짐을 쑤셔 넣고 곧장 공항으로 떠났다. 빠진 거 있으면 그냥 가서 사서 쓰기로 하지 뭐. 우리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그래서 물건이 빠져있을 건 예상했는데, 빼야 할 물건을 빼지 않고 갖고 왔을 줄이야. 명호는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배터리까지 들어있네. 이거 수화물 검사에 어떻게 안 걸렸지, 엑스레이 사실 소용 없는 거 아냐?
사실, 신혼여행에 카메라를 가져오냐 마느냐로 둘은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둘 다 카메라 하나씩 들고서 서로에게 집중은 안 하고 서로를 찍는 거에만 집중하면 어떡하지. 결혼식 촬영도 죄다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이유와 같았다. 어차피 폰에 카메라 달렸고 그걸로도 충분히 찍고도 남을 테니 장비만 한 짐 챙겨오는 일은 없게 하자고, 막판에 합의를 봤는데…그전에 꺼내놨던 미러리스 카메라가 옷더미 밑에 파묻혀 함께 하와이로 온 것이었다. 이걸 어쩔까, 하는 고민은 들지도 않았다. 옷은 다 꺼냈으니 이건 그대로 여행 끝까지 캐리어 안에만 있으면 된다. 명호는 미련 없이 카메라 가방을 넣고는 캐리어를 닫았다. 그때 등 뒤로 체온이 훅 다가왔다.
수건 한 장은 허리에 두르고, 한 장은 머리에 뒤집어쓴 민규가 명호의 어깨 뒤에 서 있었다. 빨리 씻었네 하는 생각도 잠시, 명호는 이어진 민규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카메라 안 가져오기로 했잖아. 짐에 섞여 있었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서랍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던 민규는 명호의 짧은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기왕 가져왔는데 왜 다시 넣어?”
명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캐리어를 붙박이장 안에 밀어 넣었다. 하나는 정리했고, 하나가 더 남았네. 여기엔 또 뭐가 들어있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다. “안 가져오기로 했었으니까. 이 위에 옷 던져놓아서 못 뺐나 봐.” 흐응- 하고 민규가 수긍했다. 하긴, 우리가 정신이 좀 없었지. 아, 자기야 우리 밥부터 먹자.
분명히 민규가 씻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끌고 나가서 밥 먹일 생각이 가득했는데 어느새 입맛이 증발해 버렸다. 민규에게도 서운했고, 그게 서운한 자신에게도 실망했고. 어째선지 지난 며칠 간의 연이은 불운들이 하와이까지 따라온 것 같아서, 정말 마가 꼈나 싶어서 속상했다.
그새 민규는 옷을 다 입고 머리카락을 털어 말리고는 폰으로 근처 식당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우리 뭐 먹을까? 근처에 유명한 브런치 집 있다는데 브런치 먹기엔 좀 늦었나? 제가 속상한 건 하나도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들뜬 민규에게 또 서운하고, 제가 티를 안 내는데 민규가 그걸 어떻게 알아차리길 바라는 건지 답답하고.
“나가서 밥 먹고, 와이키키 구경하고. 정신 좀 차리고 계획 좀 세우자.”
“응, 그러자.”
“우리 어제 기내식 먹고 끝이었잖아. 엄청 배고프다.”
“그러게.”
단답이 이어지고 대화가 겉도는 걸 눈치챈 민규가 조용해졌다. 멀리 가기도 귀찮았던 둘은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바닷바람이 붙어오는 자리에 앉아 식사했다. 열대과일이 가득한 메뉴로 배를 채우고 나니 명호도 기분이 한층 나아졌고, 피로와 허기가 가신 두 사람은 나란히 선글라스를 쓰고 손을 잡고 길거리로 나섰다. 식사 도중 구름이 조금 끼었지만 바람이 부는 걸 보아하니 곧 해가 날 것 같아 보였다.
“혼인신고는 내일 하러 갈 거잖아.”
“그렇지 오늘 일요일이니까.”
“아침에 서류 제출하고 곧바로 북부해안 드라이브 고?”
핸드폰으로 시청 업무시간을 재확인하고 있는 민규가 명호에게 물었다. 한 손에는 명호 손, 한 손에는 핸드폰, 바닷가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관광객들이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리듬까지 타고 있고. 정말 신났구나, 싶어서 명호는 웃었다. 구름 덕에 햇빛이 따갑지도 않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입자 고운 모래가 맨발을 간지럽히고. 하와이는 이런 느낌이구나. 호텔 방에서의 서운함이 전부 풀린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지금만 같다면 모두 해소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일 드라이브 갈 거면 오늘은 바닷가에서 놀까?”
확인할 정보를 전부 얻은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비치타월 준댔지? 안 갖고 온 거 같단 말이야. 사실 이주일 동안의 일정에 입을 옷이나 제대로 챙겨왔는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에서 놀고 나서 오늘 저녁에 쇼핑하자. 저쪽—명호는 대충 서쪽을 가리켰다—에 백화점 큰 거 있대.
다이아몬드 헤드를 따라 해변을 걷던 신혼부부는 방향을 틀어 호텔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는 해변이 아니라 길을 따라 걸었는데, 길가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좌판을 벌여놓거나 곡예에 가까운 일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앵무새들을 양손과 어깨에 얹고는 길가는 사람들을 불러세우고 있었다.
“어, 저기 저거 앵무새들이랑 사진 찍는 건가 봐.”
명호가 가리키자 민규가 앵무새들을 바라보았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긴, 가까이서 보니 부리며 발톱이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성인 남자 팔뚝만 한 새를 손에 얹고 사진을 찍기에 민규는 겁이 많았다. 하지만 김민규에게는 겁보다 더 강력한 동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거대한 홍금강앵무와 청금강앵무를 양손에 한 마리씩 얹은 서명호의 사진 한 장쯤은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명호는 민규가 겁내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민규는 제가 겁이 난다고 해서 명호에게도 같은 걸 못 하게 말리지 않았으니 달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둘은 앵무새와 명호의 사진을 민규가 찍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내오며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이제는 배우자라는 타이틀을 단 두 사람 사이에서는 달리 합의가 필요 없는 사항이었지만, 앵무새 주인인 남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기도 했다.
명호의 어깨에 청금강앵무를 얹어주며 새의 이름이 베일리라고 일러준 남자는, 홍금강앵무를 민규에게 들이밀었다. No, no, no, no, no. I’m okay. For him, please. 라고 명호를 가리키며 다급히 거절하는 민규를 설득해보려 하는 남자 등 뒤에서 명호가 합세해서 만류했다. 남자는 자신이 찍어주겠다며 민규에게 다시 권유했으나 질색하는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둘이 같이 찍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서, 명호의 폰에는 남자가 찍어준 사진이 담겼다. 양손에 앵무새를 얹고 활짝 웃는 저와 그 옆에서 포기했다는 듯이 웃는 민규.
이것저것 구경하며 걷다 보니 짧은 거리였는데도 시간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오니 이미 오후 네 시에 가까웠고 해변은 한층 한산해져 있었다.
“여긴 해가 빨리 지네.”
“그러게. 두세 시간 후면 지겠다.”
“대신 여긴 일 년 내내 이 시간쯤 지는 거겠지?”
“적도 근처니까 그렇겠지? 여름에 날이 길고 겨울에 짧고 그런 거 없을 거 아냐.”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선크림을 바른 두 사람은 곧장 바닷물로 향했다. 물속이 투명하게 비춰 보이는 적도의 바다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릴 적 셋의 가족이 다 함께 피서 가던 그 시절처럼 물장구치며 놀던 중, 갑자기 주위가 부산스러워졌다. 바닷물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떼 지어 해변으로 나가고 있었다. 민규와 명호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꽤 깊은 곳까지 나와 있던 참이라 시간이 걸렸다.
“뭐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상어라도 나타났나?”
“그럼 그거, 막 지느러미 보여야 하는 거 아냐?”
가슴까지 잠겼던 곳에서 허리 깊이까지 나왔을 때, 명호가 숨을 헉 들이쉬며 몸을 굽혔다. 민규가 황급히 그를 부축해 물 밖으로 끌어냈다. 왼쪽 종아리에 투명하고 길쭉한 것이 둘둘 감겨있었다. 맨손으로 그걸 떼어내려고 하는 민규를 주위 사람들이 저지하더니, 한 사람이 수건을 가져와서 그것을 떼어내 줬다. 명호의 종아리에는 그것이 감겨있던 모양대로 새빨간 자국이 남았다. 흰 살갗에 누군가 거세게 할퀴기라도 한 듯 남은 흔적에, 심지어 그것은 실시간으로 부어오르고 있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하는 민규와 통증에 숨을 몰아쉬는 명호에게 주위 사람들이 설명해줬다. He’s been stung by a jellyfish.
황당에 빠진 민규는 되물었다. 젤리피쉬? 해파리? 냉채에 먹는 그 해파리? 아니 무슨 물뱀처럼 길쭉하던데 그게 해파리 촉수라고? 명호의 다리에서 해파리 촉수를 떼어준 사람은 한국어와 영어를 구분치 않고 혼잣말에 가까운 반론을 토해내는 민규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자신의 일행이 가져다준 스프레이를 명호 다리에 잔뜩 뿌리고 건네줬다. 이거 계속 뿌리고, 알러지 약 먹고 자면 며칠 내에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고는 자기 일행에게 돌아가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현지 억양이 잔뜩 배인 말이라 정신이 없던 민규는 반쯤만 알아들었다. 이거 뿌리고, 알러지 약 먹고, 그리고 뭐하라고? 해파리에 쏘이면 환부에 뭘 뿌리면 된다고 옛날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불에 덴 것도 같고, 날에 베인 것도 같고, 핀으로 콕콕 찔리는 것 같기도 한 그 통증에 스읍 숨을 참고 있던 명호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한둘씩 짐을 챙겨 해변을 떠나고 있었다. 바쁘던 와중에 읽어봤던 하와이 후기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해파리가 출몰하면 그날 그 해변은 폐쇄된다고. 저녁이 다 된 시간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명호는 죽상이 된 민규를 달랬다. 민규야, 우리도 들어가자.
걸을 만 하다고 명호가 만류했지만, 민규는 잔뜩 울상이 되어서는 명호를 부축할 것을 고집했다. 종아리에 발진이 잔뜩 일어난 것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하게 쏘인 것 같긴 했다. 민규가 명호를 부축하느라 두 사람이 몸을 딱 붙인 것이, 낮에 손잡고 해변을 걷던 것과 크게 다른 실루엣은 아니었다. 절뚝이며 걷는 명호와 속상하다고 얼굴에 써 붙인 민규가 비치타월을 두르고 카드키와 해파리 스프레이를 손에 쥔 채 로비에 들어서자 투숙객들이 딱하다는 듯이 둘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명호의 종아리에는 회초리로 맞은 것보다 몇 배는 선명한 새빨간 자국이 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민규는 남자가 뿌려준 스프레이 성분표를 열심히 읽었다. 이거 잘 듣는 거 맞아?
쇼핑 계획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명호가 씻을 동안 룸서비스를 주문한 민규는 진통제와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러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운이 나쁜 편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결혼식 전까지 휘몰아치던 불운이 태평양 한복판까지 따라왔다니 기가 찼다. 아까도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욱해서 명호를 타박했던 것이 생각났다. 카메라 따로 안 챙겨오기로 합의하기 전에 그 미러리스를 꺼내서 캐리어 위에 얹어놨던 건 심지어 자신이었는데 며칠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탓인지 짜증을 냈다. 명호도 기분이 나빴을 텐데 내색하지 않으려고 내내 애쓰던 게 미안했다. 돌아가면 사과해야지. 다 털어버리고 후련하게 둘이서 남은 여행을 즐기는 거다. 신혼여행이잖아.
불행하게도 둘의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렌터카를 끌고 시청에 갔는데,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과 맞먹는 주차난에 맞닥뜨려 차 세울 곳을 찾느라 삼십 분을 헤맸다. 분위기를 쇄신하자고 둘이서 썰렁한 농담을 던져가며 팔리 전망대까지 가서 주차하고 풍경을 만끽하는 중이었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까지 달려가는 동안 흠뻑 젖은 명호가 모자에 꽂아둔 고비 이파리를 본 관리인은 웃으면서 그걸 꺾어서 비가 내린 거라고 얘기해줬다. 대체 여기 뭐 하는 곳이길래 양치식물 꺾으면 비 온다는 미신이 있는 거지.
그리고는 북부해안 드라이브를 위해 카메하메하 고속도로를 탔는데 (민규는 이게 어째서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붙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복 2차로 동네길 아냐?) 도로공사 때문에 차가 잔뜩 막혔고, 맛집이라고 기대하고 간 유명한 푸드트럭의 매운 새우 요리가 매워 봤자 얼마나 맵겠냐고 한국인의 패기로 시켰는데 한국인 기준으로도 불닭 수준은 되는 맵기였고 보기 좋게 배탈이 났다. 관광 필수 코스라는 할레이바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서 사 온 빙수를 맛보기도 전에 발이 걸려 두 가지 다 아스팔트 바닥에 쏟았다. 신혼여행 머피의 법칙, 뭐 그런 거라도 있는 걸까? 그리고 우린 그게 죄다 터지는 중이고? 민규는 너무 억울했다. 아무리 우리가 결혼 전에 십 년도 넘게 동거한 사이라지만, 그래도 신혼여행에는 신혼여행만의 로망이 있는데. 인생에 한 번뿐일 신혼여행인데. 이래도 되는 거야? 다음은 뭐야, 마우이행 비행기 연착? 오아후 중부의 광활한—하와이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는지는 또 처음 알았다—파인애플 농장을 가로지르면서 울분을 토하는 민규를 운전석의 명호가 레몬 사탕을 건네며 토닥였다. 내일부터는 괜찮을 거야.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일부터 전혀 괜찮지 않았다. 마우이행 비행기는 긴급 기체점검으로 지연됐다. 리조트에 체크인하고서는 돛이 멋들어진 카타마란 요트를 타고 혹등고래 구경을 하러 바다로 나갔는데, 난간에 착 붙어서 고래 구경을 하던 민규는 고래가 갑자기 꼬리로 수면을 팡 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바닷속으로. 돌고래가 핸드폰을 주워다가 주는 그런 디즈니 영화 같은 일이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고, 까먹고 가져온 미러리스 카메라는 그렇게 부활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민규의 사진첩은 클라우드에 꼬박꼬박 연동되고 있어서 명호 사진을 날린 건 없다는 것 정도랄까. 그럭저럭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발진과 붓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명호는 나흘을 더 고생했다.
2월은 우기라더니, 빨리 그치고 빨리 개긴 했지만 비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내렸다. 심지어 꼭 야외에 있을 때 폭우가 시작됐고 실내로 대피하면 그쳤다. 민규는 무지개가 보일 때마다 이를 갈았다. 내 인생에 무지개가 질릴 줄이야. 그 외에도 자잘한 일이 그치지 않았다. 열대어들과 함께 스노클링을 하던 민규는 멸종위기 보호종이라 바다거북에 닿아도 안 된다는 가이드의 말을 강박처럼 지키느라 물속에서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피하려다가 산호에 손을 베였다.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간 보건소 대기실에서 명호가 둘이 회피하려던 주제를 꺼냈다.
“우리 레저 할 때마다 사고가 터지는 거 같지?”
“자기야, 그런 얘기는 입 밖으로 내는 거 아냐. 그럼 느낌이 현실이 된다고.”
다소 미신이 섞인 민규의 말에도 명호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 이런 거 인정 못 해. 절대로. 할 때는 하는, 돌직구와 팩폭의 남자다웠다. 근데, 인정 못 하면 어쩔건데. 민규가 묻자 명호가 눈을 번득였다. 나한테 계획이 다 있어, 민규야. 민규는 못 미덥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보야, 미안한데 그 말이 더 불안해.
명호의 계획은 간단했다. 원우 형 말이 맞다! 우리 결혼식과 신혼여행에는 마가 꼈다! 뭔가 잡스런 부정한 것이 붙은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시콜콜 사소한 모든 일에서 사고가 터질 순 없다!
민규는 그래도 식사만큼은 평타 이상으로 매번 성공했다고 반론하고 싶었지만, 명호가 너무 불타오르고 있었다. 얘가 석민이만큼 텐션업 되는 일도 드물었고 이럴 땐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사실, 민규도 궁금은 했다. 산미가 강한 코나 커피를 두고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아후섬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알라 모아나 백화점 3층 커피숍 야외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신혼여행 성토대회를 열고 있던 참이었다.
잡스런 부정한 것이 붙었으면 퇴치하는 것이 답이라고 명호가 논리를 펼쳤다. 그러니까 우리는 등산을 갈 거야. 퇴마와 등산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민규가 커피를 마시다가 미간을 팍 찌푸리며 명호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강한 불신을 읽어낸 명호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오아후 북부에 좁고 가파른 협곡이 있는데 그 길 곳곳에 폭포가 있고,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장소 중 하나라고. 경치가 정말 좋아서 인기 있는 장소지만 워낙 멀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거기 갔다가 뭐, 산사태라도 나는 건 아니고? 요즘 비 엄청 내리잖아.”
“그런 마음가짐으로 계속 몸 사리다간 우린 이거 액땜이 아니라 올해의 운세가 되어버릴 거야.”
비장하기까지 한 명호의 말에 민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민규라고 어찌 그 심정을 모를까. 커밍아웃과 약혼발표,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쉬웠던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한 발짝 뗄 때마다 호사가들의 장난감, 가십거리가 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국내에서 효력이 하나도 없을 줄 알면서도 남의 나라에서 혼인신고 하러, 남들 다 간다는 하와이 신혼여행.
고등학생 시절부터 저희를 따라다니던 의혹 어린 시선들이 확신의 꼬리표로 바뀌었다는 것 외엔 별다른 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도 힘들었다. 그러니까 머피의 법칙 같은 것에 지고 싶지 않다.
-그거 들었어? 김 작가랑 서 작가 결혼식 전에도 일 많았는데 신혼여행에서도 고생만 했다잖아!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최악이다. 명호는 불운의 연쇄 고리 같은 것 인정하지 않고 끊어버리고 싶은 거다. 둘이서 외우는 마법의 주문.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작아지는 기분 따위 벗어버리고 용기를 내기 위해 던지는 도전장. 여태까지 잘 살아왔듯 앞으로도 보란 듯이 잘 살겠다는 세상을 향한 도발. 날카로워진 신경줄로 버티다가 여행 첫날부터 서로를 상처입혔던 건 한 번으로 족하다.
“방수 바막 갖고 오길 잘했지.”
“그래그래, 민규 잘했어. 짐 잘 쌌어.”
테이블에 코를 박고 숨죽여 웃고 있는 민규의 머리를 명호가 건조하게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성스러운 폭포라는 칼리우바’아 행은 명품관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서 결정되었다. 내일모레는 귀국이고 오늘은 아직 쇼핑을 덜 했으니까, 등산은 내일. 비가 내리건 천둥이 치건—이 말에 민규는 난색을 표했다. 아니 극복은 좋은데 목숨을 걸 필요는 없잖아. 우리 여든까지 염장지르면서 살아야 하는데 아직 오십 년 남았다?—강행하겠다는 명호의 강인한 의지가 빛나는 부부 협정이었다.
이튿날 새벽부터 호텔을 나선 두 사람은 가파르게 솟은 산등성이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에 서서 결의를 다졌다. 오아후 북부의 산들은 산이 아니라 절벽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일직선으로 땅에서 솟은 모양새였는데, 그 사이에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고 온갖 열대 식물들이 자라난 울창한 숲 내음이 들숨마다 그들을 채웠다. 주차장에는 야생 암탉이 병아리들을 한 무리 이끌면서 이것저것을 바삐 쪼아먹었다. 민규가 말했다. 멧돼지 만나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죽는 거지!
죽으면 안 된다니까, 하고 민규가 또 태클을 걸었다. 명호는 눈앞으로 펼쳐진 산길을 바라보더니 민규에게 레몬 사탕 한 줌을 건네주고는 걷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걷다가 당 떨어지면 먹으라고?
협곡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의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사람이 다니라고 다져놓은 길 또한 아니어서 두 사람은 바위를 넘고 쓰러진 나무도 넘어가며 걸었다. 발밑에는 자갈과 바위가 널브러진 개울이 흘렀고 머리 위로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넓게 뻗은 가지들이 성기게 얽혀 차양처럼 햇빛을 막아주었다. 개울이 아닌 곳도 흙이 젖어 미끄러웠고 양옆으로 솟은 절벽 곳곳에는 수백 년 동안 물줄기가 흐르며 산을 오목하게 깎아 만들어진 폭포가 있었다. 어찌나 가파른지 산줄기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마치 서울의 빌딩 숲에서 보는 것과 닮아있었다. 명호는 그 풍경을 카메라 대신 시야에 담았다. 이 모습은 필름 대신 명호의 기억에 담길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필름만큼이나 영구히 보존될 것이라 민규는 확신했다.
놀랍게도 걷는 동안 비는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기세 좋게 흐르는 개울이나 젖어 질척한 흙을 보자면 간밤에 비가 내린 것은 확실해 보였지만 두 사람이 폭포까지 걷는 와중에는 하늘은 내내 맑았다. 기세 좋게 걸은지 두 시간이 좀 안 됐을 때, 민규와 명호는 드디어 협곡의 끝에 다다랐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쏟아지는 폭포와 그 아래에 고인 연못, 모든 것을 숨기려는 듯 둘러싼 절벽. 어째서 이곳을 성스러운 곳이라 생각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와 개울이 흐르는 소리 사이로 드문드문 들려오는 새소리와 서로의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던 길보다 조금 더 미끄러웠고 어려웠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지탱해가며 산길을 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민규와 명호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승철이 형더러 부케 받고 고백이나 하라고 일부러 그쪽을 노려서 던졌는데 찬이가 받아서 너무 웃겼다던가, 석민이와 찬이가 집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잘 주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라던가, 명호가 준비하고 있는 전시회 등에 대해서. 원우와 승관을 위한 선물이 과연 그들 맘에 들까 하는 고민, 정한이 결혼식에 파트너로 데려온 연인에 대한 궁금증 등.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가족여행으로 다시 오자, 하는 계획.
산등성이 사이에서 벗어나자 시원한 북풍이 불어왔다. 바닷바람에 묻어내는 옅은 소금 냄새가 싫지 않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타려던 민규는, 웃는 얼굴의 명호가 가리키는 대로 뒤를 돌아보고는 저도 환히 웃었다. 무지개가 선명히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 풍경이 제 기억 속에서도 바래지 않을 것을 민규는 확신했다. 두 사람이 올라탄 차는 무지개를 향해 달렸다. 무지개 너머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