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
W. 두개굴
- 모두 허구입니다
망했다. 어쩌자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지? 민규는 지금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룸메인 석민이 잠시 갈 곳이 있다며 산책할 겸 같이 가자하기에 따라 나왔더니 도착한 곳이 서명호 집이다. 아니 이 자식은 지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미친놈 아니야 진짜!? 원망스러운 눈으로 석민을 바라보며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석민이 먼저 연락을 했었는지 명호는 자연스레 문을 열어줬다. 안으로 들어오자 둘은 민규만 놔둔 채 부엌 식탁에 가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고, 뻘쭘히 혼자 남게 된 민규는 아직 명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기에 거실로 가 바닥에 앉았다. 그냥 빨리 대화가 끝났으면 싶었다. 액자사진 바꿨네. 은근슬쩍 거실 구경에 집중하고 있었던 탓일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바라보니 어느새 명호가 석민을 배웅해 주고 있었다. 아니 너희들 나 여기 있는 거 까먹은 거 아니지?
“그럼 부탁해 명호야!”
“알겠어. 가족 여행 잘 갔다 오고”
“응, 땡큐! 고마워 진짜!”
어? 잠시만. 어? 거짓말이지.
쾅-.
이석민이... 날 버리고 갔다... 가족 여행은 또 무슨 소리고 혼자 나가는 건 또 뭔데. 석민에게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닫히는 문 사이로 이석민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는 것이 가장 어이없었다. 얌마, 나 혼자 여기서 어떡하라고!
“안녕”
현관으로 다가와 문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명호는 무릎을 굽혀 앉아 인사를 해왔다. 하.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나의 인생이 기깔나다는 걸 알릴 수 있을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짝사랑 상대의 집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
“너 이름 특이하더라. 드렁큰 규라며”
죽인다 이석민.
석민이 올 때까지 잘 지내보자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명호의 손길이 따스해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 그렇다. 나 인간 김민규. 일어나보니까 진짜 개가 되어버렸다. 강아지도 아닌 개. 커다란 대형견.
“근데 너 배변교육은 잘 받은거 맞지? 아무데나 싸면 안된다, 규야”
진짜로 죽일거다.
개로 변하기 하루 전날. 민규는 술집에서 석민을 앞에 두고 진상 아닌 진상을 부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긴하지만, 오랜 짝사랑에 지쳐가고 있던 민규 입장에선 술을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마시게 된 이유가 명호가 다른 과 학생 둘이서만 저녁약속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녁 같이 먹자고 물어볼 때는 항상 약속있더라. 그날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민규는 석민에게 하소연을 늘어놨다. 서명호 걘 왜 이리 인기남이여서 방학 때도 나랑 먹을 시간이 없냐.
“너 오늘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왕창 먹고 개 되려고. 앞으로 드렁큰 민규라고 불러줘”
“진짜 개같은 네이밍 센스다. 너 또 명호 때문에 그러지?”
“짝사랑이 이렇게...거지같은 거니 석민아...?”
“네가 거지같은 건 알겠음. 그냥 고백해”
“그건 무섭다고! 허어엉”
쫄보새끼, 말짱한 정신상태였다면 석민의 부적절한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아름다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반박을 했겠지만 지금은 맞는 말이기도 해서 빈 잔을 다시 채웠다. 반 병이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자 석민은 말리기 시작했고 둘의 집으로 향할 땐 석민에게 몸을 맡겼다. 중얼중얼 욕설이 들리긴 했는데 자신을 버리고 갈 정도로 정 없는 놈은 아니기에 일어나면 해장국이라도 사줘야겠다 싶었다. 그 다짐은 다음 날 이뤄질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다음 날 평소보다 잘 들리는 욕실 물소리에 잠이 깬 민규는 보이는 시선이 평소랑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토해서 속과 함께 눈도 돌아가버렸나 싶은 와중에 마침 욕실에서 석민이 나왔다. 석민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김민규 이 자식 아직도 안들어온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냐? 네 눈앞에 나 있거든?
“대체 언제 새벽에 나가서 데려왔대?”
음? 나 새벽에 나간 적 없는데?
“주인이 너 찾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
제 인생의 주인은 전데요 이석민씨. 술 많이 마신 건 난데 왜 네가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냐. 민규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석민을 바라보는데 석민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해 민규는 화들짝 놀라 석민의 손을 쳐냈다. 이 새끼는 왜 갑자기 어라. 내 손이 원래 이렇게 폭신하고 털이 많았나. 잠깐만. 내 손 왜이래. 내 목소리 왜이래!?
“뭐야 얘 성깔있네~? 알겠어 알겠어 안만질게”
“머-엉!!!!!!!!!”
“그래~ 안만진다고~”
아니 미친놈아!! 나 김민규라고!! 민규는 석민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내뱉는 소리는 그저 멍. 왕. 머엉 뿐이라 스스로가 답답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석민에게도 답답함을 느꼈다. 절규의 외침을 재롱 피우는 것으로만 받아들인 석민 덕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민규는 방에서 펜을 하나 물고 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그리고 거실 책상에 있던 종이 위에 삐뚤빼뚤하지만 알아볼 수는 있도록 적었다. 펜이 침 범벅이 된 건 어쩔 수 없었고,
[나 민규]
“오 너 글도 쓸 줄 알아? 완전 천재견이네”
너 데리고 온 김민규도 알고 잠깐. 민규? 김민규? 너 김민규야!? 석민은 입과 비례하게 소리를 크게 질렀고, 민규는 맞다는 뜻으로 앞발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무슨 이런 일이 다있냐!? 너무 놀란 석민은 상황이 심각한 건 인지했지만 어제 그렇게 개가 되겠다고 들이붓더니 진짜 개가 되어버린 민규가 웃겨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너 이제 어떡하냐 그래도 잘생겼어, 잘생긴 개야 하는 석민에 민규는 그저 작은 소리로 멍-. 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소리에 석민이 또 자빠지도록 웃은 상황은 안봐도 뻔했다.
아 쳐웃기만 하지 말고 생각 좀 해보라고!!!!
*
명호네에서 지낸지 5일 째. 좋은 소식이 생겼다. 바로 명호에게 이마뽀뽀를 받으면 5분 뒤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점! 2시간정도 뿐이지만 이게 어딘가! 명호가 외출하기 전에 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처음 사람으로 돌아왔을 때 석민에게 전화해 소식을 알렸다. 일단 잠시라도 돌아오는 방법을 알게 된 둘은 명호가 없는 틈을 타 석민이 찾아와 서로 얼굴을 있는 대로 다 구겨가며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명호만이 자신을 되돌릴 수 있는 것 같아 명호네에서 지내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명호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운 마음이 계속 들었다. 매일 명호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건 좋은 거지만 명호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항상 고민하게 된다. 석민이 무작정 자신을 맡기고 간 것이긴 해도 자신이 사람으로 돌아갔을 때, 맡아준 개가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충격받을까. 심지어 친구한테 입술도 내줬는데 기절 안하는 게 더 놀랍지. 개로 변한 모습에서도 침울함이 보였는지 명호는 오늘 왜 이렇게 처져있냐며 소파에 누워있는 민규의 귀를 마사지하듯 만졌다.
“멍...”
“오늘 밥이 별로였어?”
민규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명호가 구워준 고기는 진짜 맛있었기에 꼬리를 살랑 흔들자 명호는 밥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며 민규의 흑빛 털을 쓸어내렸다.
“좋아. 우리 목욕할까? 씻고 나면 개운할거야”
민규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람으로 변했을 땐 씻었지만 생각해보면 개인 상태로 목욕을 한 적은 없었다. 혼자하기도 쉽지 않았고. 근데 힘도 없어보이는 얘가 덩치 크고 털 많은 자신을 씻길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다가 쓰러지는 거 아닐까? 아니, 것보다 목욕을 같이 하는 건가? 설마. 아냐 설마가 사람잡, 아니 난 지금 개니까 설마가 개를 잡을 수 있잖아. 그래도 같이 목욕하는 건 너무 그렇지 않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어때? 시원하지”
그래. 같이 씻을 리가 없지. 만약 같이 씻는다고 해도 큰일 나지. 욕조에 들어와 있던 민규는 속에 있던 나쁜 마음을 고이접어 이번 목욕물과 함께 떠내려 보내기로 했다. 근데 내가 살다 살다 개전용 샴푸도 써보고 대단하다. 바지를 걷어 올린 명호는 민규의 털들이 엉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거품을 냈다. 물줄기에 거품이 씻겨 내려가고 민규가 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털자 명호에게도 많이 튀었는지 너 때문에 다 젖었다며 파하하 웃어보였다. 처음으로 보게 된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라 민규는 그냥 평생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모습이기에 명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에.
*
“다녀올게”
같이 지낸지 한달 째인 오늘도 여전히 외출하기 전 이마에 뽀뽀를 해주는 명호였다. 민규는 꼬리를 붕붕 돌려가며 명호를 현관에서 배웅해주곤 문이 닫히면 잠시 앞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으로 돌아올 땐 천 쪼가리 하나 없이 돌아와 평소엔 명호의 목욕가운을 빌려입고 있었지만 오늘은 잠시 집에 들려야했기에 명호의 빅 사이즈 옷을 빌려입었다. 가슴부근이 끼긴 하지만 벗고 나가는 것보단 훨씬 낫다. 앞으로 남은시간 2시간 40분. 이 안에 모든 걸 해결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기에 민규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와보는 집이지만 민규는 집안 꼴을 보고 열이 올랐다. 내가 며칠 없었다고 집 안이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열심히 게임하던 석민은 갑작스레 온 민규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씩 주워들었다.
“가족 여행이 진짜 재밌었나 보다? 청소 할 시간도 없었던 거 같은데”
“완전 좋았지~ 하핫! 아니 미친놈아 너 목에 그거 뭐야!?”
“뭐가. 아”
경악한 석민의 얼굴을 본 민규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아니 이건 명호가 해준 건데 익숙해져서 까먹고 그대로 하고 왔네?, 야 그래도 예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진 채로 목걸이를 푸는 민규에 석민은 끔찍한 것을 봤다는 표정을 풀지 않고 바라봤다. 개일 때는 예쁘겠지..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김민규새끼야;
“그래서 어쩐일이야. 니 폰은 저기있음”
“옷 좀 가져가려고. 오 연락 많이 왔었네”
민규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작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깨를 으쓱거리곤 자신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민규가 자신의 폰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 주웠던 옷을 세탁기에 대충 던져놓고 온 석민은 옷 몇 벌을 챙기는 민규의 모습을 보곤 입을 열었다. 너 이렇게 들고 가서 들키지 않을 자신 있냐?
“몰라. 애초에 네가 나 보내지만 않았어도 됐잖아!”
“이놈이! 내가 너 생각해서 해준건데! 그리고 진짜 나 엊그제까진 가족여행 갔었어!”
“아 그래도! 차라리 날 데려가던가!”
“명호랑 지내면서 뽀얘진 얼굴로 와서 말하면 퍽이나 내가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겠다!”
앗. 들켰네. 너랑 지낼 때 보다 너무 재밌는 거 있지. 우리 명호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몰라. 멈추지 않는 명호 자랑에 석민은 잠시 눈을 감고 한 귀로 흘려듣다가 박수를 짝하고 쳤다. 맞아. 어제 명호한테 연락왔는데 너 안부 물어보더라.
“나?”
“어. 너 못 본지 좀 된 거 같다고 뭐하냐던데”
떡하니 옆에 있는데 말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명호한테 절대 걸리지 말라며 데려다 논 사람이 할 말은 아닌 말을 내뱉던 석민은 민규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로 털털 흔들렸다.
“그게 끝이야? 나 보고싶다고 한게?”
“보고싶다고는 안했어. 혼자 김칫국 마시네”
“내가 안보이니까 나 걱정하는 거잖아! 아니야?”
“그냥 지금이 편해서 얼마나 이 편안함을 보낼 수 있는지 물어본거 아닐까?”
“죽을래? 그래서 나 뭐한다고 했는데”
“고기잡이 배 탔다고 했어”
“맞다. 나 너 죽이러 온거였는데 깜빡했네”
“잠만잠만! 명호한테 전화왔어! 여보세요? 응? 없어졌다고?”
석민은 어쩌지 하는 눈빛으로 민규를 바라봤다.
“....너 없어졌다는데?”
*
석민의 부탁을 들어준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같이 살아본 적은 없어서 고민하다 석민의 마지막 말에 알겠다고 해버렸다. 민규 닮았어. 하다하다 좋아하는 사람 닮았다고 개를 잠시 맡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 싶겠냐만은 바로 여기 있다. 바로 나. 후에 석민과 같이 온 개는 정말 민규를 닮긴 했다. 이름도 비슷하면서 덩치도 크고, 왠지 모르게 개들 사이에서도 인기 많을 거 같아 석민에게 얘 다른 개들한테 인기 많겠다고 했다가 석민의 목젖과 인사를 했다.
석민이 떠나고 이 커다란 개는 자신이 맡겨질지 몰랐는지 현관에서 가만히 앉아 문을 바라봤다. 떠돌이 개였다지만 잠깐이라도 같이 지냈던 석민을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거라 깨달은 명호는 먼저 다가가기 위해 아는 척을 해보았다. 그 초롱한 눈이 나를 바라봤을 때 괜히 민규 생각이 나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같이 보냈다. 한번은 외출하기 전에 규의 머리에 뽀뽀를 해줬다. 꼬리가 떨어질 듯이 빙빙 돌리기에 그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하게 되었다. 폭신함도 좋았고,
오늘은 잠시 외주 때문에 미팅만 나갔다 오는 거라 평소보다 일찍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규가 보이지 않았다. 일찍 온김에 규와 산책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집안 곳곳을 찾아봐도 없었다. 아예 이 집 밖을 나섰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항상 반겨주던 그 커다란 아이가 없어지니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밖을 돌아다녔다. 외모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 쉽게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민규가 요즘 연락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서 집에 있는 닮은 규에게 마음을 많이 줬더니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사실은 눈물이 고여서 팔소매로 벅벅 닦고 석민에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어떡해 석민아 규가 없어졌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문을 제대로 안닫고 나왔나봐”
- 아 가만히 좀 있어봐! 어 명호야. 걱정하지마. 드렁큰은 똑똑해서 다시 돌아올거야
“혹시나, 혹시나 못돌아오면 어떡하지? 나 지금 주변 계속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안보여”
- 진~짜!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있어. 옷 가지러 잠시 놀러, 악, 왜 때려!
“옆에 누구 있어..?”
전화가 끊겼다. 민규가 여기로 온다고 했다. 너는 왜 항상 내가 눈물이 나올 때만 나타나.
*
“너 가려고?”
석민은 신발을 신고 있는 민규에게 물었다. 그럼 울고 있는 애 혼자 둬?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석민은 민규에게 자신이 걱정되는 부분을 말했다.
“너 갔다가 변하면 어쩌려고”
“안들켜야지. 지금 명호가 찾고 있는 건 개인 나니까”
“변하기 전에 전화해라”
민규는 석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간다고 말하곤 집을 나섰다. 그리고 명호가 있다는 장소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도착했을 땐 다리를 감싸 안은 채 얼굴을 묻고 있는 명호가 보였다. 민규는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곤 두 손을 뻗어 명호의 얼굴을 조심스레 위로 올렸다. 코랑 눈가가 빨개진걸 보니까 역시나 울었다. 들려진 고개로 얼굴을 확인한 명호는 민규의 목에 팔을 둘러 꽉 껴안곤 민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 콧물 내 옷에 다 묻겠다”
“크응-! 아니거든”
“이번만이야”
이제 어떡해.. 무슨 수로 찾지? 웅얼거리는 명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민규는 금방 돌아올거라며 명호의 등을 살살 쓸어내려 진정시켰다. 민규가 명호에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말하니, 명호는 딱 한번만 공원을 돌아보자며 부탁해왔고, 민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앞서가는 명호의 등을 보면서 민규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가 나중에 알게 되면 미안해서 어떡하냐.
명호의 집으로 돌아가며 민규는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시간은 대략 20분 남짓. 애매했다. 민규는 그냥 집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나와야겠다며 혼자 생각하고 있던 와중 명호가 민규의 손을 잡아왔다. 민규는 고개를 명호 쪽으로 휙 돌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고마워”
“뭐가”
“그냥. 와줬잖아”
너니까 왔지. 입 밖으론 내뱉지 못한 민규는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줬을 뿐이었다. 이윽고 명호의 집 앞에 도착하곤 민규가 이만 들어가라며 명호의 손을 놓으려하자 명호는 나머지 비어있는 손을 들어 두 손으로 민규의 손을 잡았다.
“벌써 가려고?”
와. 누가 그렇게 예쁘게 위로 쳐다보랬어. 하마터면 아니? 평생살아도 될까? 하며 물어볼 뻔한 민규는 일이 있다며 자신이 가는 길에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민규의 대답에 시무룩해진 명호는 알겠다며 힘없이 두 손을 떨구었고 그 모습을 본 민규는 명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돌아올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어떻게 확신해?”
“그냥 감? 그 개 너 엄청 좋아하거든”
민규는 명호에게 이만 간다며 손을 흔들었고 복도를 걸은 뒤 코너를 돌자마자 벽에 몸을 붙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민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들킬 뻔 했다. 민규는 석민에게 전화해 3층 비상구라고 알렸다. 개로 변하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여기 남겨질테니 그걸 안 석민이 아까 변하기전에 전화하라고 했을 것이다. 얼마안있어 다시 개로 변한 민규는 자신의 옷을 물어 계단 구석으로 끌고 간 다음 옷들 위에 털썩하고 앉았다. 이석민은 언제쯤 오려나.
*
계단에서 드러누워있는 민규를 발견한 석민은 일단 가져온 쇼핑백에 옷과 폰을 챙겨넣고 집에서 벗어놨던 목걸이를 민규의 목에 다시 채웠다. 민규는 다행이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곤 발을 들어 석민의 다리를 툭툭쳤다. 오케이. 무언의 사인을 주고 받은 뒤 둘은 명호의 집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석민인걸 확인한 명호는 혀를 내밀곤 헥헥 거리는 규의 모습을 보자마자 꼭 껴안았다. 저거저거 김민규, 꼬리로 날아가겠는데. 석민은 명호에게 상황설명을 하기위해 입을 열었다.
“김민규가 찾았는데 마침 지나가던 내가 데려다 주러 왔어”
“진짜? 다행이다 돌아와서. 근데 민규는?”
“걘 일 있다고 먼저 갔어”
그래? 석민이 봐도 서운해 보이는 얼굴을 본 민규는 명호의 얼굴을 핥았다. 명호는 웃으며 그만하라 했고, 석민은 진심으로 정색하며 작작하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너 진짜 개 다됐구나.
후에 석민이 돌아가고 민규와 함께 들어온 명호는 일단 규를 씻겼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다 다시 한번 규를 껴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너 그냥 혼자 산책다녀온거야?”
“멍”
“다음번엔 그렇게 혼자 나가면 안돼. 나 진짜 놀랐어”
“멍”
“그래도...너 덕분에 얼굴봤으니까 용서해준다”
누구 얼굴 봤다는 거..? 나랑 만나기전에 다른 사람 본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 명호는 외출할 때만 해줬던 이마뽀뽀를 해주곤 마저 털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 빗이 내 방에 있다. 잠시만 기다려”
명호가 잠시 나가고 욕실에 혼자 남은 민규는 얼어붙었다.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고비가 생겨버렸다. 야 이석민 나 어떡해! 너 왜 나 여기 맡긴거야!! 옆집에 층간소음 될 까봐 작은 소리로 하울링하던 민규는 명호가 욕실 문을 열면 바로 뛰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빗을 가져오는데에 5분 이상 걸리는 건 아닐테니 후다닥 나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면 될 꺼다. 개들은 보통 목욕전후에 도망가니까 명호도 그렇게 생각하곤 가만히 나두지 않을까하며 계획을 세웠다.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민규는 바로 문을 향해 뛰었다. 그래 개인 상태에서 뛰었어야 하는데 왜 지금 변하냐구요!
쿵.
“아야...갑자기 왜 뛰어나..뭐야?”
“아,안녕 명호야”
“...뭐야? 김민규? 네가 왜 우리 집에 있어?”
“그러게? 내가 왜 여기있을까~?”
“너 목에 그건-”
“하하..일단 명호야 나 옷 좀 빌려줄래...?”
*
“그러니까 드렁큰이 너였다고?”
“그 드렁큰이라고 안하면 안될까, 수치스러워 죽을 거 같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명호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채 앉아있는 민규를 바라봤다. 민규는 오늘 아침에 입고 가버린 옷 때문에 지금은 아까보다 더 끼는 옷을 입고 있었다. 민규 너는 가슴으로 말하는 구나. 아니 이게 아니라 서명호 정신차려. 지금은 이 상황을 생각해야해. 그러니까 지금 한 달 넘게 같이 살았던 덩치 큰 규가 알고보니 진짜 김민규였다~ 이말이지?
“김민규”
“..응”
“네가 규라면 공원에서 나랑 공놀이 했던 것도 너야?”
“응. 내가 사람인거 까먹을 정도로 재밌더라!”
“그럼 영화보다가 잠들면 내가 베개로 썼을 때도?”
“응응”
“개 사료 안먹으려고 했던 것도 그럼-”
“그건 차마 못먹겠더라고”
명호는 머리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와. 이게 진짜 현실인가. 어떻게 보면 난 얘랑 동거하고 있었던 거잖아. 잠시만. 혹시 내가 얘한테 다 보여줬나? 못 볼 거도 다 봤으면 어떡하지? 명호는 자신이 지내는 동안 이상한 행동이라도 했을 까봐 지나간 나날들을 상기했다. 그럼 애초에 석민이도 알고 있던 건가?
“석민이는..”
“맨 처음에 알았어. 그리고 여기에 나 맡긴 것도 이석민 독단적으로 한 일이야”
“지금은 완전히 사람으로 돌아온거야?”
“아니. 그게 있잖아‘
민규는 입을 열어 우물쭈물 설명하기 시작했고 설명을 들은 명호는 귓가가 빨개지곤 쿠션을 들어 민규를 내리쳤다. 아! 아!! 명호야 잠시 진정해봐!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뽀뽀? 뽀뽀!? 아예 우리 둘이 키스하면 너 사람으로 돌아온다고 말을 하지 그래!?
“그럼 해볼까?”
“어?”
“해보자고. 혹시 모르잖아. 진짜 돌아올지 말지”
아니면. 너랑 평생 이렇게 살아도 되고. 난 좋았는데. 뭐로든 네 옆에 있어서.
헛소리 하지마. 난 너가 사람인게 더 좋아. 그리고...딱 한번이다. 딱 한번이야!
일단 해보고. 한 번이 길 수도 있잖아. 변해도 책임지고 안변해도 책임져 서명호.
그런 억지가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