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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W. 희

  다음 역은, 다음 역은 ---.

  하늘을 달리던 기차가 멈추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김민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푸른 하늘 너머 달려오던 기차가 민규의 앞에서 푸른 연기를 내뿜었다.

 

  “어서오세요.”

 

  *

 

  스물 다섯, 김민규는 꽃다운 나이에 사고를 당했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눈부시며 초목이 청명하게 빛나던 날이었다.

제가 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는 몸에 들어가보려 몇 번을 시도했으나 몸은 시도하는 족족 영혼을 튕겨냈다.

  “나, 진짜 죽었구나.”

  민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고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하게 될 일 그 무엇 중 하나도 제대로 끝낸 것이 없는데, 민규의 세상은 끝나버렸다. 제 신세가 서러워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위에는, 하늘빛 기차 하나가 달려가고 있었다. 민규는 눈을 비볐다. 하늘을 달리던 기차가 민규의 앞에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물과 차들이. 누워있는 제 몸이 흐려지다 이내 사라졌다. 지금 김민규의 눈앞에는, 기차 하나가 노란 등을 빛내고 있었다.

  “--년 --시 --분 ---출생, 김민규씨. 맞나요?”

  “네… 맞는데요.”

  민규가 말했다. 민규의 이름을 부른 그 사람은 민규의 손목을 잡아끌고서 기차의 문을 획 닫았다. 민규의 몸이 기차 안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니, 빨려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몰랐다. 문 닫힌 기차가 하늘 위로 다시 날아올랐다.

  “차 좋아하세요?”

  “네? 네…”

  민규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내가 죽은 것은 알겠는데, 제 앞에서 태연하게 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지, 와중에 남색 벨벳 정장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고전식 다구가 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 이름은 디에잇이에요.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셔요,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내보내주는 차니까. 천천히 다.”

  “네.”

  “민규씨는 태연하네요.”

  “아… 그러게요,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어요.”

  민규가 차를 홀짝홀짝 들이키며 말했다. 물론 제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놀란 감정이 더 커서 그럴지도 몰랐다. 제 손에 쥔 따뜻한 차는 마시기 좋게 식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쌉싸름한 맛이 살짝 맴돌았지만, 쓴 것은 좋아하지 않았던 민규의 입맛에도 꽤 맞는 차였다. 무슨 차인지 알아가고 싶을 정도로.

  “미련은 없어요?”

  “미련이요? 많죠. 부모님께 더 잘했어야 했고, 아. 문자라도 남기고 올 걸 그랬어요. 귀찮아서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에, 누구였더라. 어쨌든 그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저 취업도 해야하고, 돈 벌어서 여행도 다니고 싶었고, 사진도 찍기로 했는데, 그리고 진짜… 진짜 하고싶은게 많았거든요…”

민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눈물이 많지는 않은데, 미련이 많이 남았나 봐요. 민규는 제 후드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회색 후드티에 눈물자국이 경계선 짙게 배어났다. 디에잇은 그런 민규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다 해보면 되는거죠.”

  “네?”

  “그동안 수고했어요. 민규씨.”

  민규가 디에잇의 말에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몸에 닿는 한기가 시원했다. 사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품에서는 인간과 같은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품을 채워낸 부피 자체로 힘이 되었다.

  “저승사자세요?”

  “네. 그 비슷한 거요.”

  “저… 혹시 지옥에 가나요?”

  디에잇의 입에서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웃으시는거에요? 하고 민규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묻자, 그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아니요.”

  디에잇이 여전히 웃음기를 지워내지 못한 채로 말했다. 민규가 의문을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민규씨는, 아직 시간이 남았어요.”

  “시간이요?”

  “네. 민규씨를 사랑하고, 사랑해줄 사람이 아직 남아있어서요.”

  그가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잠시만 자신과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디에잇은 저승사자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갈 곳을 잃은 영혼이 제 자리를 찾아갈 때 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 디에잇은 민규가 비운 찻잔을 치웠다.

  “민규씨는 어디가 가장 가 보고 싶었어요?”

  “어… 글쎄요.”

  “아까는 하고싶은게 많았다면서, 거짓말이에요?”

  아 아뇨!! 민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고민에 빠졌다.

  저… 어느 나라든 다 가능한가요? 민규가 잠시 뜸을 들이고서 말했다. 디에잇은 웃으며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민규는 잠시 고민을 하며 뜸을 들이다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디에잇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 중국에 가고 싶어요.”

  디에잇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중국이요?”

  “네.”

  “중국 어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명호가 민규에게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를 중국 관광 안내책자를 건넸다. 민규는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겼다. 넘기고,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 머물렀다.

  “어디에요?”

  “랴오닝성. 여기요.”

  “좋아요, 출발할까요?”

  디에잇이 찻잔을 준비하는 곳 옆에 있던 금색 밧줄을 잡아당겼다. 종소리가 울리고, 기차가 순간 덜컹, 하더니 힘찬 소리를 내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철로를 딛고, 칙-하는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갈랐다.

  “민규씨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네요.”

  “네?”

  아뇨, 그냥. 하며 디에잇이 고개를 돌렸다. 과자나 먹을까요? 하는 물음에, 민규가 여기에 그런 것도 있냐며 놀랐고, 이내 둘은 과자를 먹었다. 민규는 과자를 손에 한움큼 쥔 채로 바깥을 구경하기 바빴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과자로 배를 채운 민규는 잠에 빠져들었다.

  “민규씨, 일어나요.”

  디에잇이 민규를 흔들어 깨웠다.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민규는 헉 하고 일어나서 고개를 저었다.

  “꿈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며 디에잇이 일어나려는 민규의 손을 잡아세웠다.

  “내려요.”

  “네?”

  “기차에서 내려야죠. 도착했는데.”

  “아?”

  민규의 얼굴에 물음표가 잔뜩 떠올랐다. 디에잇은 한숨을 쉬며 금빛 밧줄을 두번 잡아당겼다. 기차가 다시 덜컹거렸고, 민규가 잠시 눈을 질끈 감은 사이에 기차는 땅으로 내려갔다.

  “이제 뭘 하면 되나요?

  민규가 물었다.

  “하고싶었던 거, 없어요?”

  “그러게요, 그냥 오고 싶었어요.”

  민규는 시장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춥다고 들었는데. 영혼이여서 그런가, 딱히 추운 느낌은 없네요. 하고 제 손을 바라보았다. 이내 민규씨, 하고 디에잇이 민규를 불렀다.

  “네?”

  뒤를 돌아본 민규가 디에잇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멈칫거리는 민규를 보고 디에잇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요, 그냥 여기 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혼자 오고 싶은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민규가 머쓱하게 웃으며 디에잇에게로 다가왔다. 디에잇은 그래요?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조용히 밤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잠시 걷고 걷다가, 민규가 어. 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저,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어요. 괜찮은건가요?”

  혹시 기억에 공백이라도 생겨난 게 아닐까, 민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번 눈치챈 공백은 마음 속에서 크기를 키웠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 같았는데. 이게 아닌데. 민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민규는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자, 마셔요.”

  “또 차에요?”

  “그냥 드세요.”

  “네…”

  디에잇의 딱딱한 말에 민규는 시무룩해졌다. 차가 목구멍으로 꿀꺽 하고 넘어갔다. 이번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널뛰던 기시감이 조금 잔잔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게 되나요?”

  “민규씨가 원하는 곳이요.”

  “음… 글쎄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네. 아! 저 생각났어요.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던 것 같은데.”

  “그래요?”

  디에잇은 민규가 만든 문장의 주체를 묻지 않았다. 차의 따뜻함은 민규의 몸 안에 맴돌며 생각을 씻어냈다. 세계여행, 누가 가고 싶다고 했더라? 누가. 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가 보다 했다. 민규는 창밖에 기대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 위에 있을 수 있는 경험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반짝거리는 철로가 주변의 별빛을 머금었다. 침대 위에 던져 두고 온 작은 카메라가 그리워졌다.

  “아래 내려가서 보지는 못해요.”

  디에잇이 창가에 붙은 민규를 보며 말했다. 기차 아래로 지나가는 야경에 홀린 듯 한 모습이었다.

  “헐, 왜요?”

  “기차에도 연료가 있으니까요. 이 기차가 그냥 공짜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 시간동안 모든 나라를 다녀올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구나…”

  민규는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그래도, 같이 돌아다닐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눈 앞의 사람을 보니 아쉬움이 더해졌다. 민규는 디에잇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요? 디에잇이 민규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을 그리 보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저기요,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아뇨?”

  “아… 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정적이 이어졌다. 디에잇은 혼자서 차를 홀짝거렸다. 그래도, 진짜 본 적 없나. 민규가 곰곰히 생각하며 디에잇을 보는데, 차를 마시던 작은 입이 열렸다. 민규씨, 제 얼굴 뚫리겠는데요. 민규가 붉어진 낯으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세계일주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 대로 도시의 풍경과 조명이 햇빛에 비추어 반짝거렸고, 낮은 구름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면 민규는 무심코 탄성을 흘리고는 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건너갈 때면 마음까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이 되어도 소중하게 기억날 추억이 쌓여갔다.

  그와는 별개로, 한번 태를 드러낸 기시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속에서 기억하면 안 될 것이 떠오른 기분. 그러나 이에 대해 물어보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 하나에 민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몇 일을 흘려보냈다. 초조한 기분도 함께 쌓여갔으나, 아직까지는 새 추억에 밀려 그리 커다랗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짧은 여행의 공백. 여분의 배터리 충전기나, 작은 티슈 하나를 놓고 온 정도로 느껴질 뿐이었다.

  “민규씨. 이제 마지막이네요.”

  “벌써요?”

  민규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사람이 기차를 타고 하늘 위를 달려 보겠는가. 새로운 경험을 즐거워하는 민규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였다. 그러나 이제 제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디에잇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제 희미해진 기억들이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 있어요?”

  “꽃밭이요.”

  민규는 세계여행을 하고서부터 생각해온 마지막 장소를 이야기했다. 마지막에는 꼭 그곳에 가야지. 하고 생각해온 장소였다. 노란 프리지아가 끝없이 펼쳐진 곳, 비록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그런 곳에 꼭 가 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누구의 의지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런 오래된 소원이었다.

  디에잇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아직 조금 이른데. 생각보다 민규가 기억을 떠올려내는 속도가 빨랐다. 그는 몸이 회복될 때까지 영혼을 잡아 두는 사람. 물론 언젠가는 떠올려야 할 기억이었지만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뭐, 얼추 맞으려나. 잠시 고민을 하다 차를 내리던 손을 멈추었다.

  저승사자는 원래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다. 얼굴을 넘어서 말투나 행동, 표정까지도. 심지어 잠시 영혼이 연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꿈에 나온다거나. 곧 죽을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간다는 속설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지금은 도착 시간까지 조금 아슬아슬했지만. 디에잇이 작은 한숨과 함께 금줄을 잡아내렸다. 그러자 기차가 마지막으로 긴 증기를 내뿜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노란 꽃이 끝없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민규는 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작게 난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갔다.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고, 때마침 알맞게 불어온 바람이 머리카락을 잘게 흔들었다. 잠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자신이 죽는 줄 알았던 그 날과 비슷한 듯 다른 풍경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뒤를 돌아보면, 민규의 머리를 쓸고 간 산들바람이 잘 손질된 디에잇의 머리를 간질이고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승사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대. 나 닮았다고 함부로 따라가지 마. 짐짓 엄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충고하던 목소리가 민규의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갔다. 뒤를 돌아 본 순간, 그 짧은 시간. 머리카락을 흐트리던 바람이 스쳐가던 시간보다 조금 안 되는 그 찰나. 민규의 기시감이 존재를 키웠다. 커지고 커져서, 어찌 잊고 있었나 싶을 정도가 되었다가.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아려올 정도로 스스로를 집어삼켜왔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감정들에 민규는 뒤를 돌아본 채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명호야.”

  툭. 한번 내뱉은 이름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듯이 나아갔다. 함께 뻗은 손은 닿지 않았다. 흐려져가는 모습이 눈에 빤히 보였지만 굳은 다리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명호야, 명호야. 이미 수없이 불러온 이름을 다시 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으나, 흐려지기만 하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김민규를 둘러싼 중력이 거꾸로 뒤집혔다.

 

  *

 

  오라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병 안에 담긴 노란 꽃은 어느덧 활짝 피어 병실 안을 화사하게 채워냈다.

  “민규야. 오늘은 신기한 꿈을 꿨어.”

  명호가 민규의 손을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같이 중국에 갔던 이야기, 하늘을 바라보고, 꽃밭에서 제 이름을 부르던 민규까지. 단잠 사이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던 민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명호는 미소지었다. 네가 돌아오고 있나 봐. 하고 잠들어있는 민규의 손을 살짝 잡고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내 두어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명호. 너 이러다가 몸 상해.”

  “맞아, 잠깐 나갔다 오자.”

  명호의 친구들이 들어와서 그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아무리 애인이라지만, 끼니도 잘 챙기지 않으면 잔소리를 듣는 쪽은 네가 될 것이라는 뼈 있는 잔소리를 덧붙였다. 병원 근처에는 백반집이 있었다. 애인이 해 주던 밥과 비슷한 맛.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잘 먹지 못하던 밥이었으나, 친구들의 말에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겼다.

  대화를 할때도, 이제는 무뎌져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럴거면 그때 만나자고 하지 말걸. 같이 여행 가자고 하지 말걸. 둘이 밤을 새 가며 함께 채웠던 버킷리스트를 보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 종이들은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진 채로 먼지만 쌓여가는 중이었다.

  진짜로, 자신을 닮은 저승사자를 따라갔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얼굴, 좋아했던가. 그럼 안되는데. 네가 돌아올 곳은 여기라고 했으면서, 언제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으면서. 애꿏은 전단지 조각이 손끝에서 구겨졌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꽃집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꽃집. 이 곳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꽃을 사 가고 있을까. 명호는 이미 다 피어 곧 져버릴 것 같은 꽃을 떠올리고서 꽃집 안으로 들어갔다.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병실을 들어가는 명호의 손에는 아직 다 피지도 않은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안아든 채였다.

  오늘도 아마, 이전과 같은 하루가 되겠지. 몸은 거의 회복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갈 곳도 없이 밖을 것다가 병실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하늘에 검은 장막이 내려앉은 뒤였다. 그러니까, 앉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빛줄기는 사람의 얼굴을 분간하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었으나 서명호가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김민규?”

  “명호야.”

  오랫동안 쓰지 않아 갈라진 목 사이로 오랫동안 듣지 못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울 것 같은 얼굴이 어느 쪽인지는 누구도 구분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명호야, 나 왔어. 하고 자신을 세게 끌어안는 민규. 평소였다면 등을 퍽퍽 치면서 아프다 소리쳤을 명호였지만, 이번에는 자신도 마주 안으며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했다. 보고 싶었어. 잘 왔어. 몸은 어때?

 

  마치, 오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을 위한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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